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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한국불교와 성철스님

기사승인 2019.06.02  10:3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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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전선원(선원장: 안국스님)은 2019년 5월 26일(일) 부산 해운대구 중동에 있는 해월정사에서 천제스님을 법사로 하여 참선아카데미 지도사 2급과정 수강생들이 참석한 가운데 법회를 봉행하였다.

해월정사에서 동참한 수강생들과 천제스님
해월정사에서 실참하는 수강생들

천제스님은 ‘보고 듣는 것밖에 진리가 따로 없으니 산은 산이요(山是山) 물은 물이다(水是水)’라는 성철스님의 조계종 종정취임법어를 소개하며 법문을 시작하였다.

해월정사는 40여년 전에 성철스님의 건강을 보살피기 위하여 마련한 조그마한 사찰라고 설명하였다. 해월정사에서 한국 불교의 족적을 남긴 성찰스님을 모시고 또 성철스님의 친필을 보관하고 있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하였다. 그것은 성철스님이 해인사에 오래 있었지만 해인사는 여러 문중이 함께 있고 또 문화재 사찰이라 해인사에서 성철스님의 뜻을 실현시키기에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성철스님의 불교에는 칠성각, 산신각 등이 신앙으로 들어 있지 않았지만 해인사 내의 칠설각, 산신각과 그 안에 있는 탱화는 문화재적 차원에서 그대로 존치하였다고 하였다. 이 해월정사는 성철스님의 친필을 보관하고 있어 성철스님의 뜻을 그대로 전할 수 있는 도량이며 다가오는 시대의 불교는 이렇게 하여야 한다는 부촉 혹은 명령을 받은 사찰이라고 설명하였다.

성철스님은 한국불교 중흥 70년전 한국불교를 중흥시키고자 봉암사 결사를 하였는데 그것은 옛날 중국의 총림의 모습을 한국에 재현하고자 한 것이었지만 아쉽게도 6.25사변으로 중단되었다고 하였다. 그렇지만 성철스님은 그 당시 가진 뜻을 해인총림의 설립으로 대신하였다고 소개하였으며 그때 만든 총림의 수행방편, 총림법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며 그 예로 방장스님이 주지를 추천하면 총무원에서 그대로 임명하도록 되어 있다고 소개하였다.

총림은 참선수행을 으뜸으로 하는 사찰로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런 사찰이 아니고 계정혜 3학을 수행, 정진시키는 종합수도원이라고 설명하였다.

성철스님은 6.25사변 중에는 백발산 천제굴이라는 토굴에서 지냈고 불교정화 운동이 시작될 때 청담스님 등이 찾아와 정화불사에 앞장서기를 요청하였을 때 거절을 하였고 구파, 신파 양측에서 해인사 주지를 맡아달라고 요청하였으나 이들의 다툼에 개입하는 것을 거절하고 팔공산으로 거쳐를 옮겨 10년을 보냈다고 하였다. 그 후 성철스님은 청담스님이 주석하고 있는 삼각산 도선사로 가서 조계종 설립에 역할을 하고 운달산 김룡사에서 대중법회를 통하여 불교포교를 시작하였다고 하였다.

성철스님은 봉암사 결사를 할 때 3가지 원칙을 제시하였다고 하면서 첫째 ‘무속불교의 탈피’로 그 당시 불교는 미신적이고 무속적이며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폄하되어 있었고 서구종교가 물밀 듯이 들어와 불교가 설 자리가 없어졌기 때문이고 둘째는 생계유지로 부처님을 파는 등의 상행위 근절이고 셋째는 세속에 초연하고 군림하지 말며 사기적인 성직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는데 성철스님은 이 3가지를 몸소 실천하였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 3가지 원칙은 해인사부터 제대로 지키고 있지 않아 부끄러운 상황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성철스님은 교리 정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여겨 교리정립에 노력을 하였다며 그 이유는 부처님 당시의 가르침과 지금의 가르침이 이치나 법통에서 맥을 같이 않으면 불교가 아니고 사설 종교처럼 되어버리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교리 정립에 관한 것을 성철스님이 친필로 작성하였기에 해월정사에서는 친필을 달력에 담아 포교 현장에 활용하고 있다고 하였다.

천동설을 주장하였던 종교 등과 같이 시대착오적인 오점을 남긴 종교는 인간의 인지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자연적으로 도태가 될 것이라고 하면서 2019년 5월 달력에 성철스님의 친필로 작성된 초기경전의 말씀 중 초전법륜을 소개하였다. 초전법륜에서 부처님은 유와 무의 양변을 여윈 중도 증득한 사람이라고 하면서 ‘부처님이 가전연에게 말씀하시되 세인은 세상 물정을 착각하여 2변에 의지하여 보는데 그것은 정견에서 보면 옳지 않으니라. 세인은 주변 상황에 집착하여 모든 것을 생각하는 것이라. 양변의 치우치지 말고 중도의 견해를 가져라 그것이 깨달음의 경지이다.’라고 한 이 부처님 말씀은 한국불교, 중국불교, 그 이전 불교의 중심축이 되는 중도사상이라고 강조하였다.

성철스님은 부처님의 말사상, 육조스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평생 불사라고 생각하여 평생 수범을 보이신 분이라고 강조하고 그 다음 경전, 육조단경, 진언 등에 대한 성철스님의 해석을 설명하였다.

한국불교의 소의경전이 금강반야바라밀경인데 이 경은 중도의 사상, 반야 사상, 깨달음의 경지에서 말씀한 것으로 의식에도 활용되고 있다고 하며 반야바라밀은 차안의 세계에서 피안의 세계로 인도하는 불지혜라고 하였다. 또 육조 혜능이 금강경에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여 우리가 높게 받들고 있다고도 하였다. 금강경에서는 전도된 견해로 고가 생기는데 즉, 상의 집착하여 고가 생기므로 상을 떠나라고 가르치고 있다고 하였다. 

성철스님은 금강경의 사상 즉, 아상을 주관, 인상을 객관, 중생상을 공간, 수자상을 시간으로 해석하였다며 즉,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등의 사상을 뛰어넘어야 불지에 이른다는 것을 주관, 객관, 공간, 시간 등을 여의어야 한다고 해석하였다고 설명하였다. ‘응무소주(應無所住) 이행기심(而生其心)’를 ‘머무르지 말고 마음을 내라’로 해석을 하는데 이 경우는 존재가 둘이 된다며 ‘머무름 없이 마음이 나는 경지’라고 성철스님은 해석하였는데 이것이 선지(禪智)에 부합되는 해석이라고 설명하였다.

또 육조스님의 법보단경은 논술에 해당하는 어록이지만 육조스님의 권위, 말씀이 부처님 말씀에 버금간다고 하여 단경으로 부르고 있는데 이 단경에 있는 ‘자신의 허물을 보고 남의 허물을 보지 마라.’에 대하여 ‘자신의 허물을 보고 남의 허물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되라.’고 해석하는데 성철스님은 ‘남의 허물을 보는 눈이 없는 사람이 되라. 그것이 수행자의 마음이고 가치다.’라고 해석하였다고 설명하였다.

진언을 불교교리에서 배제할 수 없다고 하면서 반야바라밀다심경은 당나라 현장법사가 번역한 것을 우리가 가장 많이 독송하고 있는 경으로 이것은 반야부 경전을 요약한 핵심 경전이며 마지막에 반야바라밀다주가 있는데 이 진언은 유통부촉분에 해당한다고 설명하였다. 주문은 번역하지 않고 음역하였는데 그것은 중국어 해당하는 한문으로 번역할 수 없었기 때문이고 또 이 진언의 세계는 육식(六識)의 범주로 논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 담겨있다고 설명하였다. 육식의 세계는 우리가 알고 있지만 8식, 9식의 세계로 육식으로 표현할 수는 없다고 하였다. 또 진언의 세계는 8식의 세계로 예를 들면 통상의 서원문은 우리의 서원이지만, 반야바라밀다주, 능엄주는 부처님의 서원이고 8식의 언어라면서 이런 진언은 부처님의 말씀이고 삼매를 성취하지 않고는 알 수 없는 말씀이라고 설명하였다.

능엄주의 세계, 밀교의 세계를 참선수행자들이 미신적인 요소가 있다고 하여 우리나라에서는 낮게 보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옳지 않다고 하였다. 밀교의 세계는 선의 세계와 동등한 영역으로 받아들여야 하고 우리 중생의 근기의 부족함을 메우기 위한 부처님의 비밀한 방편설이라고 설명하였고 또 능엄주는 인도에서 불교가 사라지게 될 때인 13세기에 나란타 도량 수호경이라며 행교의 세계, 밀교의 세계, 참선 수행의 세계로 정리하는 것이 합리적인 해석이라고 강조하였다.

우리말은 범어와 같이 소리글이어서 가까운 발음표기가 가능한데도 우리는 아직도 중국어 발음으로 쓰고 있다고 하였다. 하나의 예로 범어 ‘스바하’를 중국어 ‘사바하’로 표현하였지만 우리는 ‘스바하’라고 하여야 한다고 성철스님이 그렇게 제안하고 주장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30년 동안 아직도 ‘사바하’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며 한국불교의 현실을 개탄하였다.

우리글이 범어와 닮아 있다고 하는 이유로 한글창제를 세종대왕이 한 것으로 알고 있으나 사실은 ‘신미대사’가 한 것이라며 다만 신미대사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하여 신미대사의 이름을 빼어 놓았기 때문에 기록에 남아 있지 않다고 하였다. 또 말년에 세조가 속리산을 간 이유는 사실상 복천암에 있는 신미대사를 만나기 위하여 마음의 병을 고치기 위함이었다고 설명하였다. 한글의 사실상 창제자인 신미대사에 대하여 우리 불자들은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며 법문을 마쳤다.

정태권 tgjeong@kmo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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