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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에 들어가려면 자신의 욕심이 무엇인지 알아야

기사승인 2019.05.18  17: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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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연이 아닌 주인공으로

서암큰스님 문도회장, 문경 선센터 프로그램운영 수석연구위원이며 봉암사 선방에 주석하고 있는 혜우스님은 2019년 5월 7일(화)과 8일(수) 부전선원에서 참선아카데미 지도사 2급과정 수강생들에게 ‘참선에 있어서의 정견’이란 주제로 법문을 하였다. 이하는 양일간 행한 혜우스님의 법문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참석한 수강생들과 혜우스님

혜우스님은 대학교 2학년 때 처음 기초교리강좌를 듣고 졸업 후 출가하였다고 자신을 소개하고 참선에 대한 기본적인 말하겠다며 강의 내용을 소개하고 자신의 법명인 혜우에 대하여 혜(慧)는 지혜로 깨달음이고 우(牛)는 소로 마음을 뜻하므로 깨달음을 추구하는 마음이라고 설명하였다. 참선을 하기 위해서는 불교의 기초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며 불교에서 불(佛)을 부처 즉 깨달은 사람이고 교(敎)는 가르침으로 '깨달음으로 가는 길을 가르쳐 주는 것'이 불교라고 설명하였다.

부처님이 깨달은 것은 우주와 진리와 모든 존재의 실상을 알았다는 것이며 그것은 인연법, 삼법인, 사성제이고 수행에 있어서 삼법인과 사성제를 제대로 알면 되고 수행 자체는 사성제 안에 다 들어있다고 하였다. 삼법인은 제행무상, 제법무아, 일체개고로 초기경전에서 부처님은 무상, 무아, 고를 항상 강조하셨는데 끊임없이 변화하므로 ‘나’라고 할 실체가 없고 그래서 고(苦)라고 가르쳤으나 대승불교에서는 열반적정으로 바뀌었는데 무상과 무아를 제대로 알면 그것이 바로 열반적정인데 이것은 불교의 특수한 가르침이라며 모르면 괴로움이고 제대로 알면 즉, 한 생각이 바뀌면 그대로가 열반적정이라고 강조하였다.

보통 사람은 이해는 하지만 실제로 상황이 닥치면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므로 고집멸도의 사성제가 나왔다고 설명하고 무상, 무아를 제대로 안 되어서 괴로움이 되는데 이것은 4고8고로 실제로 살아가면서 겪는 것이며 이 고의 원인은 욕심이라고 하였다.

혜우스님은 중생의 업을 마음이라고 정의하고 욕심이 없는 마음 즉, ‘무심(無心)’하면 괴로울 일이 없으나 인간은 욕심이 있어서 그렇게 되지 않는데 그렇다고 처음부터 무심을 얘기하면 중생들에게 좌절감을 주는데 그것은 무심이 지고한 상태를 말하기 때문이므로 중생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경향이 있고 특히, 무념무상을 얘기하면 너무 어려워진다고 설명하며 중생심을 인정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삼법인은 우주의 실상, 진리를 말하고 사성제는 사람이 수행하는 원리를 말한다며 8정도를 닦아 욕심을 버려 열반을 증득하는 것이 수행의 핵심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리고 정법이냐 아니냐는 삼법인, 사성제가 기준이 되는 틀이라고 하고 신심이란 부처님의 가르침에 흔들리지 않은 마음이라고 강조하였다.

괴로움이 없는 사람은 없으나 그 원인을 찾아 열반으로 가는 것은 반야심경의 오온개공 도일체고액과 같다면서 이것은 삼법인 사성제 안에 다 들어있다고 설명하였다. 이것이 되면 돈오돈수 즉, 그대로 받아들여지면 돈오돈수가 되지만 실제로 닥치면 그렇게 되지 않는다며 마음에 업이 없는 사람은 가능할 것이지만 주위에 그런 사람은 없었다고 하였다.

마음 수행에서는 마음을 이해하여야 하는데 그것은 마음의 업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이 업은 욕심 즉, 탐진치 중 욕심에서 나온다고 하였다. 인간의 오욕은 식욕과 색욕, 물욕(재물욕), 권력욕, 명예욕, 수면욕 등이며 식욕과 색욕은 하나로 취급하여 존재의 기본 욕구, 본질적 욕구라고 설명하고 수면욕은 잠, 진실에 눈을 감는 마음, 게으른 마음, 적당한 선에서 타합하고 안주하려는 마음, 편해지게 싶은 마음 등이므로 수행에 방해가 되고, 또 권력욕이라는 마음이 있으면 그런 상황을 만날 때 낚시 줄에 끌려가게 된다고 하였다. 명예욕은 본인은 잘 모르는 것이 문제인데 남이 잘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이가 들수록 몰라주면 서운해하고 또 착한 일을 할 때 더욱 치성하게 된다고 설명하였다.

마음 수행이란 상황에서 자기 마음을 보는 것이므로 나에게는 어떤 욕심이 많은가, 주된 욕심이 무엇인가, 나는 어디에 걸려 있는가를 확실하게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사바세계는 욕망과 욕망이 충돌하는 문제 덩어리의 세계이므로 불교의 깨달음이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하면서 문제를 자각하여 그것을 소멸시켜야 하고 그것이 소멸되지 않으면 다음 생으로 가는데 이것이 윤회라면서 문제를 파악하지 않으면 해탈 열반은 없으므로 마음이 바뀌어야 해탈, 윤회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역설하였다.

끊임없이 참회하고 험한 일을 당하면 수행하는 마음이 중요하고 오히려 그런 상황을 만들어준 사람에게 고마워해야 하는데 고마움 마음이 생기면 참회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열심히 했으니까 잘 될 거야 하는 것이 막연히 마음이 하나의 걸림돌로 장애가 되므로 사무쳐야 하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하면서 나에게는 어떤 마음(욕심)이 많은가 끊임없이 체크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불교는 중생에서 불보살, 욕망에서 원력으로, 업의 세계에서 해탈로, 고의 세계에서 낙의 세계로, 사바세계에서 극락세계로 즉, 욕망의 세계에서 무심의 세계로 추구하여 나가는 것이지만 스님들이 마음 혹은 깨달음을 얘기할 때 진리의 세계만을 얘기하는데 그것이 현실과 다르다고 지적하였다. 그러므로 불교를 인식할 때 고를 먼저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하며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말처럼 깨달음을 추구하다보니 몸에 병만 남았다고 말했다. 병이 나는 것은 뭔가 원인이 있는데 그 원인은 무리이고 무리하면 탈이 나게 되어 있다고 하며 보리를 구하는 마음은 그 자체가 욕심으로 이것이 모순이라는 것을 알아 욕심을 버려야 한다면서 너와 내(중생과 보리)가 없는 마음이 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고 경험담을 소개하였다.

자신의 문제 즉, 자신의 욕심은 그대로 두고 깨달음이 증득되겠는가, 현재의 나의 문제가 바로바로 해결하지 않고 깨달음이 되겠는가는 하는 모순을 깨닫고 거기에 치중하기로 하였다고 설명하였다. 구체적으로는 마음에 어떤 동기가 있는지가 중요하고 수행에는 무심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였다. 옛날에는 그렇게 하였다 하면 그런 고정된 마음으로 할려고 하는데 그것은 하나의 문제를 야기할 수 있으니 항상 열린 마음, 깨어있는 마음으로 행하는 것이 마음공부의 핵심이라고 강조하였다.

화두선이 행주좌와에서도 화두에 몰입하는 것이지만 근본적으로 욕심을 알아야 그 욕심의 마음을 버릴 수 있다고 하면서 구체적인 예로 깨달음만을 추구하려면 그것도 욕심이며 색심이 일어나면 자기 마음에 색심이 있구나, 물욕이 일어나면 나한테 물욕이 있구나 알고서 이것들을 버리는 것이 참선 공부라고 설명하였다. 그래서 나한테 모순이 있음을 자각을 하는 것이 중요하고 자기 욕심을 인정하지 않고 일시적인 삼매에 있다고 하더라도 욕심이 없어지기 않기 때문에 먼저 욕심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그 욕망이 얼마인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또 마음의 업을 분명히 알아야 하는데 잘하려는 욕심 때문에 화가 많이 나고 또 뜻대로 안되면 화가 쌓여서 나중 화가 많으면 손발이 튀어나온다고 설명하였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는 ‘모든 것은 마음은 지은 바다’인데 잘못된 것은 무엇이나 다 내 마음 안에 있으므로, 공부하는 사람은 저인간은 왜 이래 하는 것 자체가 내 욕심으로 생각하고 나에게 해당된 부분만 열심히 한다면 그 사람도 따라온다고 하였다.

마음공부를 하다는 것은 항상 내가 주인공이라는 것이며 금강경에서 인욕선인을 가리왕이 토막토막 낼 때라도 인욕선인 자기가 주인공으로 극한의 상황을 만들어준 가리왕에게 오히려 고마워하기에 자기가 주인공이라는 것이고 다른 것은 모두 조연이라고 설명하였다. 수처작주(隨處作主) 입처개진(立處皆眞)하여 마음을 아는 것은 중요하고 마음의 중심이 잡히면 그 힘으로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즉, 마음의 근간이 흔들리면 병이 되는데 주체가 흔들리면 존재감을 상실하므로 이를 스스로 자각을 하면 치료가 된다고 설명하였다.

마음을 이해하면 즉, 무슨 마음으로 하는가를 알면 문제는 해결된다고 하였다. 다시 말하면 마음을 알면 안심입명(安心立命)하여 비참한 죽음은 없는 것이고 마음을 모르고 죽으면 비참한 죽음이 되어 전생은 이렇게 이생은 저렇게 오락가락하면 윤회하며 살아가게 된다고 강조하였다.

마음의 업을 줄여나는 것이 수행이고 다른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는 것이며 또 수행의 근본은 나의 문제를 보는 것이므로 내 문제와 씨름하다보면 저절로 풀려 나간다고 하며 법문을 마쳤다.

정태권 tgjeong@kmou.ac.kr

<저작권자 © e불교중흥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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